From New Plymouth to Napier

오늘의 일기예보는 10시부터 4시까지 강수확률 100% ㅎㅎ

아이들은 일단 아침을 먹자며 나보고 서브웨이와 맥도날드 중에 고르라고 했다. 나는 맥모닝이 먹고 싶기도 했고 그게 더 쌀 것 같아서 맥도날드에 가자고 했는데 아이들 표정이 뭔가 밝지 않아 보여서 물어봤더니 서브웨이가 더 싸다고 했다. 그래 답정너들아 서브웨이 가자~_~!

차를 타고 가는데 초딩들이 우릴 보고 fuck you를 외쳤다. 그래도 맨 앞에 있던 아이는 예쁘게 손을 흔들어줘서 그것만 기억하기로 했다.

어제부터 우리가 계속 관심을 받는 걸 보니 이 지방에는 아시안들이 많이 살지 않는 것 같다고 우리끼리 추측했다.

얘들 말로는 마오리 사람들이 일을 안 해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정부 지원을 많이 받아서 교육수준이 좀 낮아서 그런지 인종차별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고 했다.
img_3291셋 다 할인되는 메뉴로 골랐다. 4.9불! 페퍼로니가 짜서 아침식사로 먹기에는 조금 적합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서브웨이랑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는데 여기는 치즈를 세 가지 중에 고르라고 하더라. 그리고 래디쉬가 들어가는 것 같았다. 여기에다 쿠키까지 든든히 먹고 아이사이트로 출발!

그래도 비가 아주 많이 오지는 않는 것 같아서 짧은 코스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직원이 바람이 나무 강하고 매우 추울 거라고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아이사이트에 딸린 박물관을 얼른 구경하고 그래도 일단 산에 있는 관광안내소까지 달려갔다. 위치상 산이 안 보일 수가 없는 곳이었는데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 날씨에도 관광안내소에는 사람이 많았다. 그 중에 비를 뚫고 산을 내려온 사람이 있었는데 상진이가 말을 걸었다. 그 사람은 어제 산에 올라가서 헛에서 하룻밤 자고 내려온 거라고 했다. 아버지가 느려서 아버지는 지금 내려오고 있다고 해서 우리는 막 웃었는데 웃다가 애들은 자기 같아도 이 날씨에 아빠를 놔두고 올 것 같다고 하며 한 번 더 웃었다.


이런 사진을 좀 찍고 아이들은 한참 동안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내 의견을 물어봐서 나는 와이토모나 아니면 시내에 있는 미술관을 가면 좋겠다고 했다. 와이토모는 비 때문에 안 될 것 같아서 미술관으로 갔다. 안내소 직원이 추천해 렌 라이 미술관으로 갔는데 umm it was quite.. modern. 이라고 해두자. 나쁘진 않았는데 재만이나 상진이 취향은 아닌 것 같았다.



이렇게 북섬의 서안을 보고..

맥도날드에 들어가서 앞으로의 일정을 고민했다. 재만이는 다음날부터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해서 무조건 네이피어로 돌아가야 했고, 상진이는 금요일까지 웰링턴으로 가기만 하면 되지만 거리상 파머스톤 노스에서 하룻밤을 묵고 내려가는 게 베스트인 상황이었다. 나는.. 그래도 아이들이 지내는 네이피어가 궁금하기도 했고 같이 마지막 날 술 한 잔 하면서 회포를 풀면 좋을 것 같이서 상진이한테는 정말 미안하지만 네이피어로 가자고 고집을 부렸다.

재만이가 일을 하루 더 쉬면 훨씬 나을 수 있는 상황이어서 상진이가 ‘니 일 하루 더 쉴 생각 없나.’했는데 재만이가 단호하게 거절했다. ‘농부한테 일당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서 하는 말이가!’ 흐규규 아무튼 이때 분위기가 썩 좋진 않았다.

재만이는 돌아가는 길 덜 심심하게 우리 모두 네이피어로 가면 좋겠지만 우리가 중간에 내려도 큰 상관은 없어 보였고 상진이는 어느 모로 보나 파머스톤 노스에서 내리고 싶어했다. 이미 작별인사를 다 하고 왔는데 다시 가는 것도 민망해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내가 고집을 부렸고 상진이가 희생을 해서 모두 네이피어로 떠났다. 이때가 이미 4시쯤이었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Pak’ n Save로 가서 바나나 케이크랑 초코우유를 하나씩 집어들고 차로 왔다.

늦은 시각이었지만 날씨가 너무 좋아져서 떠나기 전에 다시 한 번 산으로 갔다. 상진이는 한 시간 코스라도 가고 싶어했는데 재만이가 시간이 안 됐다.


그렇게 해서 이런 사진이 나왔다. 아이들이 너무 아쉬워해서 나도 안타까웠지만 그나마 떠나기 전에 이런 사진이라도 남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제 진짜 출발! 바나나 케이크가 생각보다 맛있어서 열심히 집어 막었다. 재만이는 뭘 진짜 안 먹더라. 한참 뒤에야 누가 반이나 먹었냐면서 나를 째려봤다. =_+

재만이는 늘 ‘누님, 혹시 핸드폰 배터리가 충분하시다면..’하며 조심스럽게 노래를 틀어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차에 핸드폰을 연결하는 잭이 없었고 테이프라곤 전 주인이 가지고 있던 옛날 노래들 뿐이어서 운전하는 재만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어서 열심히 알 것 같은 노래들로 선곡해줬다. 중간중간 산중에서 인터넷이 끊길 땐 한국에서 다운받아온 노래들을 틀어줬다.

절반쯤 달려 파머스톤 노스에 다다랐을 때 오늘 있을 마지막 만찬을 위해 Pak’ n Save에 들러서 장을 봤다. 재만이가 닭구이가 먹고 싶다고 했는데 닭이 너무 비싸다고 해서 그냥 또 스테이크를 먹기로 했다. 닭이 비싸서 소라니 뭐 이런 경우가.

아가들이 오늘 밤 달리기 위해서 레드불을 한 병씩 사마시는 모습이 대단히 엄격 근엄 진지해 보였다. ‘ㅁ’ 밤에 나랑 놀아주려고 마시는 거여서 한 번 더 감동..☆

밤에는 차 안에서 하늘을 봤는데 별이 너무너무 많았다. 이런 게 은하수라는 건가? 저게 정말 다 별일까? 한참 동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는데 핸드폰 카메라에 담기지가 않았다. 그냥 계속 바라보면서 마음으로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차 안에서 많은 생각들을 한 것 같다. 이 아이들과 지내는 동안 많은 걸 배웠다.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곱씹었다.

물병을 딴 지 몇 시간이 지나면 세균이 번식해서 버려야 한다, 뭐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피곤하게 살아왔던 최근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물병과 세균이라는 게 나에게 뭘 뜻하는지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까!)

꼭 맛있는 걸 먹어야 즐거운 여행이 아니구나. 대충 먹으면서도 훨씬 가치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구나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싱글로 지냄으로써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여행이 끝나고 취업을 해서 생활인이 되고 나면 절대로 이 아이들처럼 자유롭게 살 순 없겠지 하며 슬퍼지기도 했다.

중간중간 ‘형사법 과락 나오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도 평화로운 마음을 흐려지게 했다. -_-


11시 반쯤 아이들이 지내던 숙소에 도착했다. 마찬가지로 워홀러이면서 숙소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마도카 상과 인사를 나누고 사장과 대면했다. 마도카 상은 친절하고 사랑스러웠는데 Keith 씨는 퉁명스러운 사람 같았다. 방 필요없고 공용공간에서 날만 새우고 가겠다고 해도 각자 15불씩을 내라고 했다.=_=

익숙한 숙소로 돌아온 아이들의 얼굴은 기쁨으로 빛났다. 친구들과 편하게 농담을 주고 받는 모습이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사람들 같았다. 역시 이 곳이 제일 좋은 것 같다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img_3388
상진이가 자정부터 부지런히 요리를 해서 스테이크 2탄을 만들었다. 남의 버터를 훔치는 데-_- 시간을 지체해서 이번엔 좀더 질긴 스테이크가 되었다.

이번엔 로즈마리를 키우는 친구가 줬다며 로즈마리를 추가했는데 향이 무척 좋았다.

재만이는 다음날 일 나갈 생각 때문인지 와인을 엄청 빨리 마셨다. 누나는 왜 혼자 여행 왔어요? 우리 뭘 믿고 여기까지 따라왔어요? 이런 얘기들을 했다.

‘누나 솔직히 뉴플리머스에서 우리 따라온 거 후회했죠?’ ‘아니 어떻게 후회를 안 했을 수가 있겠나.’ 아이들이 이런 말을 주고 받았다. 귀여운 녀석들. 나는 마운트 타라나키가 뭔지도 모르고 그냥 너네랑 놀려고 따라간 거였는걸.

참 호비튼 얘기가 나왔는데 얘네들은 내가 호비튼으로 버린 돈이 70불 정도인 줄 알고 있길래 내가 그거 사실 100불 넘었다고 하면서 이거 말하면 너네가 뉴플리머스 못 따라오게 할 것 같아서 말 안 했다고 했다. 애들은 뭐가 그렇게 비싸냐고, 누나 이거 완전 호갱 아니냐고 하더니 재만이가 누나 맛있는 거나 사먹으라면서 기름값에서 10달러나 빼줬다. 1불 아끼려고 그렇게 신경쓰더니 10달러 나한테 줘버리면 술 깨고 나서 후회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그 뒤로는 나도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런 사진을 찍어놨당ㅋ_ㅋ 막판에는 웃기게도 막 영어로 농담을 주고 받았던 것 같다. 한국에서였다면 이불을 찼을 테지만 아이들에게는 일상적인 일이므로 나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으로..

얘네들은 취한 와중에도 영어를 참 잘 알아듣는다. 내가 신기해 했더니 여기 와서 눈치만 늘었다고 했다.내 발음이 미국에서 교환학생 하다 온 독일인 여자애랑 똑같다 이런 얘기도 했던 것 같다.

재만이의 hard work 덕분에 두세 시쯤 와인 두 병을 빠르게 끝내고 재만이는 빠빠이. 재만이가 너무 취해서 작별인사도 제대로 못했다. ㅠㅠ

나도 그때쯤 상태가 별로 좋진 않았는데 다행히 돈 계산 할 정신은 남아있어서 상진이 몰래 상진이 가방에 쌈짓돈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상진이 짐정리 하는 건 도와주지도 않고 소파에서 자버렸다.
중간에 상진이가 한 번 깨워서 풀룸 소파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더라. 처음부터 거기에서 잘걸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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